정말 오랜만의 포스팅입니다. 작년 9월에 ‘스마트교육과 디지털교과서’라는 글을 쓰고 나서 그 동안 아무 글도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으니까요.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블로그에 글을 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블로그의 이름이 ‘Smart Learning in Action’이듯이 무언가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이유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동안 스마트교육에 대한 관심이 덜해지거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은 숙성된 메주가 된 느낌이랄까요? 이제는 그동안의 생각도 정리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공유할 필요성을 느껴서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스마트교육, 정말 스마트기기 없이 가능한가?

이번에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스마트교육, 정말 스마트기기 없이 가능한가?’입니다. 그동안은 ‘스마트교육이 스마트기기로 하는 수업이냐?’라는 질문에 많은 분들이 ‘꼭 스마트기기를 활용할 필요는 없다.’라든가 ‘스마트기기가 중심이 되는 수업이 아니다.’라고 대답을 많이 하셨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그렇게 대답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스마트교육이 기기 보급 중심의 사업이 되면 특정 기업 퍼주기 정책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서 비롯된 답변이라는 생각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주장을 펼치는지는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둘째, 스마트교육이 맹목적인 기술 활용 교육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스마트교육’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를 처음 접하는 많은 분들이 스마트교육을 ‘스마트기기로 공부하는 것’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교육의 본질(21세기 학습자 역량 강화, 학생 중심의 교수학습, 실제적 평가 등)은 놓치고 ‘이런 기술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써먹지?’라는 고민에 빠지기 쉽습니다. ‘WHY’에 초점을 두지 않고 ‘HOW’에만 초점을 두게 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교실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마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신저로만 대화를 나누는 웃지 못할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새롭게 알게된 ‘신기한’ 기술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SAMR 모델

이는 Ruben R. Puentedura 박사의 SAMR 모델을 보면 좀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SAMR 모델은 테크놀로지의 활용과 교육의 변혁(transforming)에 관한 모델로 테크놀로지의 활용 정도를 대체(Substitution), 증가(Augmentation), 수정(Modification), 재정의(Redefinition)의 4단계로 나누었습니다.

  • 대체(Substitution) : 대체 단계는 기술을 사용하든지 안 하든지 기능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타자기를 사용하듯이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것, 세익스피어의 글을 책으로 읽던 것을 컴퓨터 등을 통해 읽는 정도에 해당합니다.
  • 증가(Augmentation) : 증가 단계는 기술을 사용했을 때 기능적인 이점을 얻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흔히 많이 사용하는 복사하기 & 붙여넣기 기능이나 맞춤법 검사, 사전 찾기, 하이퍼링크 등이 해당됩니다.
  • 수정(Modification) : 수정 단계는 기술의 사용으로 인해 활동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부터는 기술이 없으면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메일이나 스프레드시트, 그래픽 도구 등 공유된 지식을 생성하기 위해 문자, 영상, 음성 도구 등이 사용됩니다.
  • 재정의(Redefinition) : 재정의 단계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활동들이 가능해 지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workgroup과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Content Management System) 이나 이야기나 글의 구조적 관점을 시각화하는 도구 등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 개별 학습을 지향하고 학습자에게 많은 자율성이 주어집니다. 학습 환경의 확장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SAMR 모델에서는 SA 단계를 향상(Enhancement) 단계로, MR 단계를 변혁(Transforming) 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기술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것보다는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한 활동, 학습자 중심의 개별학습 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마트교육은 ‘교육의 변화’와 ‘테크놀로지 활용’의 결합체

다시 스마트교육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스마트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중 하나는 스마트교육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 그리고 기술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오해를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학교 교실 환경에서 아이패드2와 애플 TV로 무선 미러링 하기’라는 글을 쓴 후 많은 선생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선생님들의 교실에도 구축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러링은 일종의 열풍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께서는 미러링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실물화상기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교육용 앱 몇 가지를 선생님이 활용하는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라 예상해봅니다. 이것은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약간의 편리함은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SAMR의 단계에 빗대어 볼 때 SA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학생 중심의 교수 학습도, 학생들의 창의성과 의사소통능력, 협업 능력을 강조하는 그 어떤 활동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시 농촌간의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 학습 중 미러링 기술을 활용해 화상회의를 했다면 어떨까요? 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활동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SNS에 게시했다면 어떨까요?

결국 스마트교육은 ‘교육의 변화’와 ‘테크놀로지의 활용’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선생님들께는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준비된 선생님들에게 우선적으로 보급할 필요 있어

그럼 스마트교육은 스마트기기 없이 가능한 교육일까요? 사실 교육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교사 중심의 교육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옮겨가는 것만 해도 굉장히 큰 도전이고 많은 노력과 열정,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교육의 변화를 위해서 반드시 스마트기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 혁신학교나 발도르프 교육, 대안학교 등 이미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술의 긍정적 활용을 통한 교육의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스마트기기가 필요합니다. 테크놀로지는 기존의 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한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는데 바로 준비된 선생님과 학교에서만 스마트기기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부에서는 일괄적인 스마트기기의 보급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스마트교육 모델학교나 연구 학교 등을 통해 시범적으로 기기를 보급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학교는 학교 단위로 예산이 지원되고 모든 교사가 참여하는 형태이며 승진 가산점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실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예산을 학교 단위로만 줄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 소양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추고 있고, 교육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과 그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그 학급에게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것입니다. BYOD(Bring Your Own Device)가 가지는 한계도 분명히 있고 예산을 받을만한 곳이 없어서 최근에는 선생님들이 직접 사비를 털어 기기를 구입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왕이면 스마트교육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이 보다 효율적이고 현명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