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발도르프 교육’을 접한 때는 학부 1학년, 유아교육개론 강의를 들으면서이다. 당시에는 학업에 별로 뜻이 없었기 때문에 – 대한민국 학부 1학년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  이런게 있구나 하고 넘어간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얼마전 발도르프 교육을 다시 접할 기회가 있었다. 스마트교육 분야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한 교육잡지사의 기자가 찾아와 발도르프 교육과 스마트교육을 비교하는 기획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스마트교육을 대변할만한 대표성을 지니는가?’라는 것 때문에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기사의 기획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원래 인터뷰는 발도로프 교육과 관련된 교수님 한 분과 나, 그리고 인터뷰 기자가 함께 할 예정이었지만 발도로프 교육쪽의 의견을 주실 교수님과 일정이 맞지 않아 개별적으로 진행하였다. 당시 교수님은 스마트교육에 대해 굉장한 반발심을 가지고 계셨고 나를 만나면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기세로 강경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자분을 통해서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난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생각은 항상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과연 나를 어떻게 설득하실지 직접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협동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여하튼 기사가 스마트교육 vs 발도르프 교육 구도로 흘러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발도르프 교육을 모르는 상태에서 스마트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어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 해보았고 확실히 스마트교육과는 교육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스마트교육 뿐만아니라 일반적인 교육과도 차별성이 크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발도르프 교육과의 두 번째 인연이 곧 찾아왔다.  삼성전자 사회봉사단 김한주님의 소개로 지난 7월 22일 일요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인사동의 어느 작은 공간에서 영국 Emerson 대학의 Robert Load 이사, 초중고 선생님, IT 업계 또는 관련 분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Emerson Collage는 발도르프 교육기관으로 어린이, 청소년을 비롯해 성인교육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이기도 하다. 대담은 약 3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처음에는 이사님이 간단히 Emerson Collage와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후에는 질의/응답을 갖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여전히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발도르프 교육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쓰기에는 위험해서 대담의 내용과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들 중 일부를 간략히 정리해 볼까 한다.

발도르프 교육

  •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는 1919년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1861-1925)에 의하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하였다.
  • 모든 학생들은 12학년 동안 유급/낙제 없이 교육을 받는다.
  • 풍부하고 다양한 예술적인 그리고 수공적인 수업은 정제된 의지의 형성과 학생의 실질적인 삶의 방향을 촉진시켜준다.
  • 수업의 내용과 형태가 아이들의 배움 과정과 어린이/청소년시기 안에서 인간발달 단계에 맞추어져 있다.
  • 0~7세, 7세~14세, 14세~21세 등 대체적으로 7년 주기로 인간의 발달 단계를 나누고 단계별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과업이 다르다.
  • 14세 이전까지는 TV나 컴퓨터 등 새로운 기술의 접근을 제한하고 사회적인 것을 배우는 것을 강조한다.
  • 7세~14세는 예술을 통한 교육을 강조한다.
  • 영국에서는 발도르프 학교를 졸업하면 일반적인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 없이 입학할 자격을 갖춘다. 대안교육으로서 발도르프의 교육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발도르프학교는 모든 성적제도를 제거하였다. 성적표에는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특성화하여 학생의 개별적인 과목에 따른 노력, 성과의 발달정도(성취도), 재능의 상태 등이 나타나게 된다.
  • 교육공동체 : 발도르프 학교에는 교장과 같은 관리자가 따로 없고 교사회와 부모회가 공동적으로 책임을 갖고 운영한다.

일부 내용 한국발도르프교육협회에서 참조.

기억에 남는 말들

- 교사나 학부모가 원하는 것을, 특히 지적인 것을 학생들에게 투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동기부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 교육은 인류가 살아온 과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과정.

스마트교육과의 접점

사실 나는 이날 모임이 이루어진 것 자체가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발도르프 교육은 기술 문명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는데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또는 기술과 교육의 접목이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 해서 꼭 하고 싶었던 질문 한 가지를 했다.

2015년부터 한국 정부는 초중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예정이고 교육과 기술의 이러한 접목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것은 아니고 세계적인 추세인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돌아온 답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14세 미만이라면 (기술이나 기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면 14세 이후라면 어떻냐는 질문에) 무조건 사용하기 보다는 동작원리나 그것을 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이해를 해야 한다. 기술을 가르쳐주기 전에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갖게 되면 자전거의 작동 원리, 체인에 기름칠하는 법, 타이어 가는 법 등을 알면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은 생략하고 완성된 기술만 주면 그것은 마법(magic)을 주는 것과 같아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없고, 그저 사용만 할 뿐이다.
  • 전기가 발견되고 전구가 발명되어 대중화 된 것이 이제 겨우 100년 남짓이다. 인류가 그동안 살아온 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인데 그것이 과연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적절한 발달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TV나 기술은 잠시 미루어두자는 것이다.
  • 지적인 측면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물론 그런 부분을 잘 흡수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능력, 정신적-육체적 측면의 질병을 돌보지 않고 너무 성장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정신적으로 공허한 인간을 만들어 낼 뿐이다. 자식은 원치 않지만 부모의 개입이나 간섭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았을 때, 물론 외적으로는 전문가적인 기질을 가질 수 있겠지만 영혼은 비어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학생들이 원치 않는 것을 교사나 학부모, 사회가 주입해서는 안 된다.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이 있었고 여러 가지 반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발도르프 교육의 본질이 Anti-technology는 아니기 때문에 이정도 선에서 관련 질의 응답을 마무리하였다.

스마트교육은 교과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에서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스마트교육이

  • 과연 교육적 효과성이 있는지?
  • 일반화 될 수 있는 교육인지?
  • 신체적/정신적 부작용이 있지는 않은지?
  • 투입되는 예산이 특정 업체에게만 수혜를 주는 것은 않는지?

등에 대해 아무도 명확하게, 속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발도르프 교육과 스마트교육의 접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TV와 같이 일방적인 콘텐츠 소비 매체와는 다르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또는 스마트기기)는 쌍방향 매체로서 정보 검색 및 지식 생산, 공유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 기술 또한 사회의 일 부분이다. 이를 억지로 막는다는 것은 오히려 적절한 대처없이 방치하는 것과 같다. 교육에 있어서 ICT나 스마트기기의 활용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이미 가정에서,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에 손쉽게 노출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인 또래집단의 문화속에서 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곧 사회적인 고립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떻게든 노출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적절히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약과 같은 암적인 존재가 아니라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초등학생 때 잠깐 배운 프로그래밍이 그 학생의 논리적인 사고력은 물론이고 관심사나 직업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로그래밍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친구들과 함께 토의하고 협력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생성하고, 공유하는 과정 또한 분명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현재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기술이 주는 폐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연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은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농경사회도 아니고 산업사회도 아니며 하루에도 수많은 데이터가 쏟아져나오는 지식기반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주장이 다음과 같은 스마트교육 정책을 지지하는 당위성을 띈다는 오해는 하지 말자.

  • 클라우드기반 스마트교육 플랫폼 구축
  • 디지털교과서의 전면시행
  • 1인 1 스마트기기 보급

덧. 나를 비롯한 전국의 여러 선생님들께서 ‘스마트교육 중앙선도교원’으로 활동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무리를 마치 교과부의 정책을 추종하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비판을 넘어 비난과 비아냥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교육 중앙선도교원이기에 앞서 한 명의 교사이고 교육자이다. 이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납득할만한 근거가 뒷받침 되는 주장은 수용하고 받아들일 줄도 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 건전한 비판문화를 저해하는 행동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