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아이스크림 대란

지난 주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스크림 대란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한 선생님으로부터 단체 메시지가 왔는데 내용인 즉슨 현재 서울 강동지역의 아이스크림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서 특정 URL로 접속하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선생님들과 조금 얘기를 나눠보니 이것 때문에 고생하신 분들도 몇몇 계신가 보다.

아이스크림이 보유한 풍부한 교수학습자료들은 수업을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주어진 것을 클릭하는 것이 싫어 작년부터는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선생님들께서 아이스크림만으로 수업을 하시지는 않지만 아이스크림에 상당히 의존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일률적인 교육을 지양하는 것은 인디스쿨도 고민하고 있는 내용이다. 인디스쿨하면 선생님들의 번뜩이는 수업 아이디어들과 파워포인트 자료, 학습지, 교수학습과정안 등으로 넘쳐나는 곳이지만 학년별, 과목별, 단원별로 상당한 추천을 받는 일명 킬러 수업자료(killer app에서 용어 착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수업이 비슷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인디스쿨 여름연수에서 한 선생님은 다른 반 선생님의 교실에 들어갔는데 마치 자기 교실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학급 환경 구성 자료들을 인디스쿨에서 받았고 대체로 사용하는 자료들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e-교과서 3.0

요즘 나는 e-교과서 3.0 지원단(?) 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제작한 e-교과서 외에 선생님들이 직접 멀티미디어 자료나 인터넷 자료들을 추가해서 e-교과서 형태로 출판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도무지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정말 필요한 작업인가?’라는 e-교과서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교과서 3.0은 기존의 서책형 교과서를 단순히 디지털화(PDF)한 후 그 위에 레이어를 얹어서 추가 정보를 입력한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교과서를 그대로 보면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학습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선생님들이 저작도구를 통해 집어 넣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저작도구가 사용하기 불편한 것은 논외로 한다.) 그래서 요즘 함께 작업하시는 선생님들은 기존의 사이버 가정학습 자료, 연구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교과서 자료, EBS의 동영상 콘텐츠인 EDRB 등을 활용하고 계시고 아이스크림의 자료를 넣자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잠깐! 근데 e-교과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서비스지?’

내가 볼 때 e-교과서는 서비스 대상이 애매모호하다. 서비스의 대상이 누구인지가 분명해야 서비스를 정확히 구현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대상이 얻는 가치도 명료화할 수 있다. 다음은 얼마전 참가한 Big Camp for Education에서 사전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사용했던 일명 Big Camp Canvas다.

상당히 간소화한 캔버스이지만 서비스 대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몇 가지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 이를 통해 고객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정리해 보는 작업이다.

교사라면 교사가 느끼는 문제점이 있고, 학생이라면 학생이 느끼는 문제점이 있다. 그 둘은 비슷할 수는 있지만 같지는 않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교과서에서 제공해 주지 않는 풍부한 학습 자료가 필요할 것이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자료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e-교과서는 두 가지가 혼재하고 있는 느낌이다. 수학 교과서를 받아보면 다양한 문제 풀이 영상과 해설, 답안, 수준별 학습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어느 정도 학생용에 초점을 두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야 하는 자료는 학생용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다운로드 받아서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e-교과서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 교사용 e-교과서를 만들더라도 기존의 아이스크림과의 차이점이 있나 싶다. 오히려 아이스크림은 도입, 전개, 정리, 평가 등 단계별로 콘텐츠가 구성되어 있고 접근 UI가 그나마 편리하기라도 하지 e-교과서는 교과서 모양을 그대로 하기 때문에 확대/축소를 해야지만 내용을 학생들에게 잘 보여줄 수 있고 이마저도 조작이 쉽지 않아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
  • 교수학습자료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e-교과서 형태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교수학습자료는 적시적소에 적절한 자료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e-교과서 저작도구는 서책형 교과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요소들이 노출되기도 하고 교사가 원하는 내용을 강조해서 전달하기가 어렵다. 결국 기존의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드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반면 효과성은 떨어진다.
  •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e-교과서도 결국 정형화된 교과서라는 점이다.

스마트교육과 디지털교과서

사실 내가 스마트교육에 매료된 것은 스마트교육이 추구하는 철학이었다. 수많은 정보가 날마다 쏟아지는 정보화 문명 사회에서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에게 필요한 학습자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곧 스마트교육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학습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시당초 내가 지적했던 것처럼 스마트교육과 디지털교과서는 상당히 모순되는 개념이었다. 학생들의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물론 차시단위수업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파편화된 지식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실제적이고 비구조화된 문제상황(PBL)의 제시, 프로젝트 학습 등 교수학습방법의 혁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교육 내용도 더 줄여야하고, 문제풀이 위주의 평가 방식, 대입제도 등도 수정해야 한다. 교과간의 통합교육에 대한 고민도 이어져야 한다. 혁신학교, STEAM교육 등과의 연계도 고려해봐야 한다. 교사의 잡무를 줄이고 수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은 물론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 신장과 교사의 자발적인 연구 문화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이 지금 스마트교육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나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스마트교육의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디지털교과서이다. 디지털교과서는 결국 교과서다. 교과서는 7차 교육과정부터 이미 하나의 학습자료에 불과한 것 아니었나? 근대의 교육이 가지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교육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교육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장려해야 할 정부가 천편일률적인 교과서를 디지털로 만들고 그것이 스마트교육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디지털교과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교과서로 가르치면 스마트교육이 주장하는 미래 학습자 역량이 길러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디지털교과서가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 최신의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디지털교과서는 그냥 학습자료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이나 쉬는시간, 방과후에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는 자료 정도가 디지털교과서의 정확한 위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디지털교과서도 결국은 ‘책’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교과서를 수업시간에 활용해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방식이 되는 순간 디지털교과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아래 영상은 아마 디지털교과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법한 TED영상이다. 나는 디지털교과서를 만드려면 적어도 이 정도로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디지털교과서로 공부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우리 나라는 미국처럼 교과서가 비싸지도 않고 대부분 책을 학교에 두고 다니기 때문에 가방이 무겁지도 않기 때문이다.

얼마전 국회에서 열린 ‘스마트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 참석했다. 좋은교사운동쪽에서 에듀넷, 사이버가정학습 등 기존 정부의 교육정보화 사업을 비판의 대상으로 들고 나오긴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디지털교과서라고 본다. 기존에 벌려놓은 사업들도 많고 그것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는데 또다른 큰 사업을 추진하려고 해서 나온 비판일 것이다. 분명, 기존의 교육정보화사업을 되돌아 볼 필요는 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홈페이지만 혁신적으로 바꾸어도 교사, 학부모, 학생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더욱 스마트한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쓰다보니 조금 길어진 감이 있지만 아마 많은 선생님들께서 글의 내용에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스마트교육을 좋아하고 열심히 활동하지만 스마트기기나 디지털교과서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교육의 본질적인 측면에 더 관심이 많은 이유는 이 글로 정리 끝이다! 스마트교육이 디지털교과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스마트교육의 철학적 본질에 충실히 다가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환경을 마련해 주는 데 더 많은 노력과 예산이 들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던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 등 교육 전반에 걸친 변화에 대한 논의들도 많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스마트교육을 얘기하면서 STEAM교육도 얘기하고 혁신학교도 얘기하고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도 얘기했으면 한다. 그것이 진정 스마트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