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스크림, e-교과서,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글을 통해 많은 의견들을 주고 받았다. 핵심은 e-교과서나 디지털교과서가 스마트교육이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21세기 학습자 역량 강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내용이었다. 위의 글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언급하긴 했었지만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지 현장 교사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현재의 학교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현재의 학교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고자 한다. 우리 나라 교육은 먼저 국가교육과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국가교육과정은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담고 있으며 그것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자료가 교과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 교과목이 세분화 되어 있고 학습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 7차 교육과정부터 학습 내용을 감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내용들이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1차시 안에는 도저히 끝내기 어려운 학습 분량이 교과서에 담겨져 있기도 하다. 또 학습자의 수준이나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내용들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 교과서에 담겨져 있는 많은 교육 내용들이 실제적인 맥락이 결여된 채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토의하는 방법과 절차에 대해 배우고 실제로 토의를 해보는 경우, 토의를 해야만 하는 문제 상황이 제시되지 않고 단지 토론 주제를 교과서에서 미리 정해놓고 토론해보자는 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6학년 2학기 듣말쓰 4단원 ‘마음의 울림’에서는 축하하는 글쓰기에 대해 공부하는데, 축하하는 글이 필요한 경우 알아보기 -> 축하하는 글을 쓸 때의 주의할 점 알아보기 -> 축하하는 글의 짜임과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 알아보기 -> 읽는 이의 마음을 고려하여 축하하는 글을 써 보기 -> 축하하는 글을 쓸 때에 주의할 점을 고려하며 고쳐 써 보기의 순서로 제시가 되어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정말 축하하는 글을 쓸만한 상황이 교과서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고 지나치게 분절적인 학습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축하하는 글 쓰기를 하는 데 한 단원이나 할당하고 있어서 나는 대부분 다른 과목과 연계하거나 이 단원을 짧게 재구성해서 넘어가는 편이다. 6학년의 수준에서 축하하는 글 쓰기가 뭐가 어려워서 5차시(40분 X 5차시 = 200분)나 축하하는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문제들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매우 구조적인 문제(1+1 = 2와 같은)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학 교과서는 구조화된 과목의 최절정이라고 볼 수 있고 기타 과목에서도 다양한 해결 방법이 나올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하나의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많다.
  • 입시라는 평가제도가 갖는 한계로 인해 학생들은 여전히 단순 암기, 문제풀이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교육은 많은 면에서 획일적이고 단순한 지식전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 TED에서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는 주제의 발표가 가장 많이 본 영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상황 속에서 진정한 교사의 역할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단순히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그것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교과서를, 단순히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기계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교육과정의 재구성 및 창의적인 교수학습설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존재인가? 나는 당연히 후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과서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현재의 교과서는 지루하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디지털교과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디지털교과서가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어떠한 문제점이 있었고, 그것을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해결해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디지털교과서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만 고민을 하는데 그에 앞서 ‘왜 디지털교과서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왜 디지털교과서이어야만 할까?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 종이책보다 가볍다.
  • 수준별, 맞춤형 학습자료의 제공이 가능하다.
  • 가장 최신의 정보 등 다양하고 풍부한 학습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위의 사항들은 디지털교과서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다. 그런데 위의 장점들이 과연 정말 장점일까는 좀더 고민해봐야 한다. 흔히 ‘수준별’하면 수학이나 영어가 떠오른다. 영어의 경우는 iBT TOEFL시험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는 결국 문제풀이식 평가를 기반으로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국 암기위주의 평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KERIS에서 2011년에 발간한 디지털교과서 효과성 측정 연구를 살펴보면 디지털교과서의 효과성을 ‘학업성취도’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항목이 있는데 학업성취도평가라는 것 자체가 결과 위주의 평가, 지식 위주의 평가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디지털교과서가 문제해결력 증진에도 일부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평가도구를 살펴보니 실제로 학생이 어떤 비구조화 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평가했다기 보다는 문제인식, 정보수집, 분석능력, 확산적 사고, 의사결정, 기획력, 실행과 모험 감수, 평가, 피드백 등의 항목에 대해 자기평가를 하는 방식인 것 같다. (한국교육개발원, 생애능력 측정도구 개발연구 : 의사소통 능력, 문제해결 능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중심으로;RR2003-15-03)

스마트교육의 궁극적인 목표가 학습자의 미래역량 강화인지, 학업성취도의 향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궁극적으로는 두 가지 모두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학업성취도는 단순 암기, 반복학습, 결과평가 방식으로 측정된 학업성취도를 의미함) 학습자의 미래역량을 강화하길 원하면서 그것을 학업성취도 위주로 평가한다면 그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창의성, 의사소통능력, 비판적사고력, 협업능력 등의 학습자 역량을 기르는 것이 목표라면 당연히 디지털교과서의 효과성도 디지털교과서가 얼마나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해야 한다.

다양한 학습자료의 제공은 어떨까? 교과서에는 사실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지 않고 그래서 참고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있다면 관심있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지식의 이해나 습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글의 초반부에서 제시했던 우리 학교 교육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단지 학습자료가 부족하거나 맞춤식 자료를 제공해주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디지털교과서가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고 해서 학생들의 미래 학습자 역량이 절대 저절로 강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지털교과서가 아니라 교사의 교수학습설계이다.

선생님의 수업 아이디어가 곧 희망이다

그럼 앞서 얘기했던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사로사 지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도적인 접근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내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첫 번째는 PBL이나 프로젝트 학습, 협동학습 등의 다양한 교수학습방법을 사용해서 수업을 잘 설계 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보다 구체적인 수업 사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수도권(서울과 그 주변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 중에 하루에 1만 8,154톤이 인천 수도권 매립지에서 처리된다. 이 중 서울시의 쓰레기가 절반이나 된다. 20년 후면 매립장이 꽉 차게 되고 더 이상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게 되어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따라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1990년도부터 소각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목동과 강남구의 쓰레기 소각장이 2000년에 건설되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 정부에서 다른 지역의 쓰레기도 함께 처리하라는 ‘소각장 광역화’ 발표를 하자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다른 구의 쓰레기가 자기 지역의 소각장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1개 구에 1개의 소각장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동대문구에도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려고 하였다. 쓰레기 소각장을 혐오 시설이라 생각하는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였다. 그래서 동대문구에서는 쓰레기 소각장을 허용하는 지역에 1년에 70억원을 지원하고, 주민 편의 시설(수영장, 헬스장, 복지 시설)을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전농 3동에서는 쓰레기 소각장을 자기 지역에 건설하겠다고 동대문구에 신청하였다. 환경 시설은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추진할 수 있다. 동대문구청에서는 찬성하는 주민, 반대하는 주민,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않은 주민들이 모여서 공청회(자기 주장을 펼치는 토론장)를 열기로 하였다. 쓰레기 소각장 건설은 전농 3동 주민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 강인애 외, <교실 속 즐거운 변화를 꿈꾸는 프로젝트 학습> 중

PBL의 특성은 문제가 복잡하고 문제에 대한 답이 정해져있지 않으며 문제가 실제적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보면서 아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학생들의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문제에 몰입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수업의 중심에 서게 된다. 답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창의성, 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 비판적사고력 등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단순히 토론하는 방법과 절차를 배우고, 관심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라는 교과서를 펴고 수업을 했다면 수업의 전개 양상은 무척 달랐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얼마전 한 선생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수업 사례를 들었다. 사실 수업 사례라기 보다는 수업 아이디어에 가깝다. 5학년 역사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하면서 ‘임진왜란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프로젝트 학습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글자 되지 않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짜릿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거 정말 재미있는 주제잖아!!’ 학생들이 임진왜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진왜란에서 어떤 일들이 있는지도 물론 알아야 할테고 가상의 나를 설정한 후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창의성도 발휘할 수 있다. 모둠별로 협동 프로젝트를 한다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의사소통능력과 협업능력도 길러질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발표결과를 동영상으로 제작하거나 슬라이드 등으로 발표하고, 이것을 블로그에 정리하거나 SNS 등을 통해 공유한다면 ICT 리터러시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교과서를 펴놓고 임진왜란을 글자와 동영상으로만 배운 학급과 ‘임진왜란에서 살아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부를 한 학급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선생님들의 반짝이는 수업 아이디어와 교수학습설계는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미래학습자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큰 보탬이 된다. PBL이나 프로젝트 학습, 협력학습 등을 교실에 도입해본 선생님이라면 아시겠지만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할 때와는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자세, 눈빛부터가 달라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결국 생동감 있는 교육을 만드는 것은 수업 자료 그 자체가 아니라 선생님들의 창의적인 수업 설계와 수업 방법 개선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논외이긴 하지만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여전히 교과서가 절대적이고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또는 디지털교과서라는 틀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디지털교과서는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현장의 모습은…

그런데 모든 선생님이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교사 개인적인 차원과 교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볼까 한다.

인터넷 문화와 관련하여 1% 법칙 또는 90-9-1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온라인 이용자의 90%는 관망하며, 9%는 재전송이나 댓글로 콘텐츠에 기여하고, 1%만이 콘텐츠를 창출하는 경향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나는 이 법칙이 교육계 안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본다. 즉 1%는 교육철학과 열정을 가지고 교과서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열심히 수업 설계를 하고 적용하며 그것을 공유하는 선생님, 9%는 교과서나 1%의 선생님이 생산한 수업 콘텐츠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재구성해서 사용하고 이를 다시 공유하는 선생님, 나머지 90%는 콘텐츠 소비자로서 이미 생산된 여러 개의 수업 콘텐츠 중에서 어떤 것을 사용할지 고민하는 선생님 또는 큰 고민 없이 주어진 것만 활용하는 선생님으로 구분할 수 있다(수치는 절대적이고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디스쿨이나 에듀넷은 콘텐츠 생산자와 콘텐츠 재생산자, 그리고 일부의 콘텐츠 소비자(이미 생산되어 있는 여러 콘텐츠 중에서 어떤 것을 쓸지 고민을 하는 선생님)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고 아이스크림의 경우는 일부의 콘텐츠 재생산자와 대부분의 콘텐츠 소비자가 주요 서비스 대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PBL이든 프로젝트 학습이든 협동학습이든 무언가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이 교육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빠른 시간안에 이루어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제7차 교육과정의 이후부터 국가교육과정의 기본 철학은 구성주의이지만 실제 학교 현장은 여전히 행동주의적 철학에 입각해 학습 및 생활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철학에 대한 인식의 부족, 관성에 의한 변화 속도의 더딤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환경적인 요소 또한 적지 않다.

사실 학교 현장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경우 교사라는 직업을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방학도 있고 퇴근도 일찍하고.’가 주된 이유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대한민국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길게 할 생각은 없지만 학교의 크고 작은 행정업무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학교 행사, 각종 대회 등으로 수업시수 확보가 어렵다보니 진도나가기에 급급하고 가르칠 내용은 많다보니 결국 강의식으로 수업을 할 수 밖에 없다. 또 선생님이 학생들의 학습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지도도 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과정들이 우리의 선생님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한마디로 진이 빠진다. 그런 상태라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고 하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하더라도 쉽게 뜻이 꺾일 수 밖에 없다.

평가 문제도 큰 걸림돌이다. 내신 시험, 또는 수능을 앞두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문제중심학습이나 프로젝트 학습을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평가가 여전히 학력위주이고 과정의 평가보다는 결과평가가 주된 이상 교사가 이런 수업을 진행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서울지역 초등학교의 경우 중간/기말고사 식의 학업성취도평가를 폐지하고 담임교사가 자유로운 형태로 평가를 하는 수시평가제도가 실시되고 있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여전히 평가 문제는 큰 골칫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교사의 교수학습설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정책 추진이 필요

스마트교육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을 추진하는 교과부나 KERIS에서 교육철학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철학을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철학은 분명한 목표와 함께 방향성을 제시하고 중간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저 멀리서 반짝이는 작은 불빛에 의지해 걸어간다고 상상해보라. 분명한 목표점인 불빛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방향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불빛을 향해 나아가면서 해야 할 수 많은 일들을 떠올려보자. 그 중에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마트교육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 디지털교과서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일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지털교과서가 미래사회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충분한 연구과 논의를 거쳐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의 교육이 발전하는 데 큰 힘을 보탤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정책이라는 것은 성급히 결정할 것이 아니라 멀리 내다봐야 한다. 게다가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정책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디지털교과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디지털교과서를 단순히 서책형 교과서에 멀티미디어를 첨부한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디지털교과서는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저 학생의 개인적인 교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의 교수학습설계이기 때문이다. 스마트교육이 21세기 학습자 역량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한 나는 디지털교과서가 선생님의 교수학습설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0-9-1 법칙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비록 대다수의 선생님이 주어진 것을 활용하는 콘텐츠 소비자라 하더라도 정책을 추진하는 교과부나 KERIS의 목표점은 콘텐츠 소비자 90% 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많은 선생님들이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의 생산자나 재생산자가 더 늘어나려면 기존의 3R + PBL, 프로젝트 학습 등 구성주의 철학에 입각한 다양한 교수학습방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선생님들의 업무도 줄여주어야 하고 평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자율권이 더 많이 부여되어야 한다.

또한 교수학습설계 단계에서 선생님들이 활용할 수 있는 풍부한 교수학습 콘텐츠가 필요하다. 최근 e-교과서 3.0 지원단을 활동하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느끼는 것 중 한 가지는 교사 개인이 준비할 수 있는 교수학습 콘텐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6학년 1학기 듣말쓰에는 드라마의 특성을 알아보는 단원이 있는데 ‘소나기’를 드라마로 제작한 것이 제공되고 있다. 소나기는 물론 문학적인 가치가 뛰어난 작품이지만 요즘 학생들의 흥미나 관심을 고려한다면 가장 최근의 드라마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한다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일부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고 싶다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각시탈의 일부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CF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뉴스의 한 장면, 신문사나 사진 작가들이 그동안 수집한 수 많은 사진 자료들, 음원 자료들 등등 선생님들의 수업을 위해서라면 어려움 없이 손쉽게 그리고 저작권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EBS에서 제공 중인 EDRB나 에듀니티의 ‘미디어립‘은 좋은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교수학습 자료들은 개방, 공유, 집단지성을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해 연결된 여러 선생님들이 협업을 통해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교수학습자료 들을 공유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업 준비를 손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0%의 선생님들도 한 단계 위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주 e-교과서 지원단 협의회에서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이 있다.

지금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교수학습자료(재료)와 그것을 활용해서 어떤 수업을 설계했는가(레시피)에 대한 공유이지 선생님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우려의 본질은 사실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또다른 클릭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디지털교과서라는 틀에 교육을 가두는 것은 아닌지.

사실 디지털교과서가 과연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왜냐하면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라는 법적인 틀에 갇혀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정 또는 인정 받은 교과서만 디지털교과서가 될 수 있는 여건 속에서 과연 서책형 교과서에서 다양한 자료를 추가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 나올 수 있을지가 염려된다. 물론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므로 점진적인 발전이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다만 그렇다면 교과부와 KERIS가 해야 할 일은 디지털교과서가 추구하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주고, 시간적인 제한을(그것도 급박하게) 두기 보다는 어떤 단계를 거쳐 디지털교과서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로드맵을 확실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로드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디지털교과서는 실패하는 사업이 될 것이고 그에 대한 연쇄반응으로 스마트교육 또한 실패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스마트교육이 롱런하고 우리 교육이 진일보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